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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금)
백암 아트홀
저녁 8시



1. 29살의 크리스마스, 영화 싱글즈, 뮤지컬 싱글즈

소설 <29살의 크리스마스>를 읽게 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즈음 일본소설이 좋아서 이것저것 찾아 보던 중 알게 되었던 거... 같다. 영화 <싱글즈(2003)>가 나오기 전에 읽었던 건 확실하니까.. 적어도 5~6년 전이다. 소설에 대한 세세함 감상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좋은 느낌이 남아 있다. 책을 덮으면서는 스스로에게 약속도 했다. "29살이 되는 크리스마스에 다시 한 번 읽어보자"고. ^^; 그 어린(?) 나이에도 주인공의 고민이나 삶에 많은 공감을 했었고, 그래서 진짜 29살에 봐도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소설을 통해 구상한 나만의 '나난'에 대한 이미지가 컸기 때문인지 영화 <싱글즈>는... 'so so'였다.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 소설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만;) 영화 자체가 '별로'였다기 보다는, 아마도 내가 바랐던 그대로의, 내 상상 속의 인물과 영화에서 표현된 인물이 좀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못 줬던 것 같다.

뮤지컬 <싱글즈>는 이제서야 보게 되었지만, <싱글즈>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초연 배우였던 가수 이현수씨에게 큰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뮤지컬 <싱글즈>가 영화 <싱글즈>를 원작으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싱글즈>에 대한 'so so'한 호감이 뮤지컬 <싱글즈>로 그대로 옮겨갔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 나는 버려야 할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거다.

뮤지컬 <싱글즈>를 보고 있으려니, 영화 <싱글즈>가 어땠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올해가 가기 전 우선 영화부터 보고, 소설 <29살의 크리스마스>를 구입해야 겠다.
29살의 크리스마스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헉?!)

2. 유레카! 보석 같은 배우들♬

공연은 정말로, "excellent"였다!!

줄거리, (큰 줄거리 속) 이야기, 노래, 무대 구성 등등 모든 것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멋진 배우들이다.

내가 본 공연의 캐스팅은  홍희원(수헌), 유나영(나난), 조진아(동미), 김세우(정준).


수줍게 베시시 웃는 20살 처녀보다는, 왠지 아줌마와의 공통점이 더 많을 것 같은 29살. 아줌마적 속성을 품고도 겉으로는 요조숙녀이고 싶어하는 29살 싱글 여성 '나난'을 능글맞고 뻔뻔하게 연기한 배우 '유나영'.

무대 위가 아닌 듯, 마치 내 친구가 그러하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공감을 하게 되면서, 진심으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나영님, 쌩유!^^ (연습장면 및 인터뷰 보기)



개인적으로는 '나난'보다 더 관심이 갔던 씩씩한 '동미'역의 배우 '조진아'. 위 사진은 연습 때의 모습이고, 공연 때는 단발 길이의 컷트 스타일이라 시각적으로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역할 자체가 튀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엄정화 못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목소리톤이 내가 좋아하는 시원하게 쭉- 뻗는 타입이라서, 귀에 카랑카랑 울리는 것이 듣기에도 매우 좋았다.♡

"더블 캐스팅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틀에 한 번은 쉰다는 거"라고 대답할 줄 아는 재치까지 갖춘 배우. ^^ 지금까지는 몰라서 못 봤지만, 앞으로는 챙겨가면서 다른 공연도 보러 가야겠다고 당장에 결심했다. 찜!



'동미'와 더불어 이제부터는 챙겨보려고 찜해둔 또 다른 배우는 '정준'역의 '김세우'. 난 왜 이런(?) 사람들이 좋은지 모르겠다. 주연보다는 조연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죄송;;) 외모지만 알고보면 실력자인? 이런 사람들. ㅎㅎ 공연 포스터에는 얼굴이 넙적둥글붸붸- 해서 전혀 기대를 안 했었는데, 실물이 훠어어얼씬!!! 괜찮다. (어쨌든 외모적으로는 상당히 부담 없는;; 김세우님 인터뷰)


저~ 위의 인터뷰 당시의 사진과 바로 위 공연 포스터 속 인물(맨 오른쪽)이 같은 사람인 걸 알아 보겠는가? -_-; 더블 캐스팅인 이성진-앤디 공연으로 관객이 몰려서인지, 아직 오픈 초기라서인지 (뮤지컬엔 오픈빨이 없나?) 만석이 아니라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이던데... '김세우'님 사진만 살짝 바꿔줘도 관객이 좀 더 들 지 모른다.... 고 생각했다;;;

아무튼, 평범하지도 못한 남자, 기 센 female 친구에게 뭔지 모르게 당하고 사는 남자 역으로는 아주 제격이었다. (아.. 칭찬이 아닌 거 같다. -.- 역할에 몰두해서 보도록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뜻으로 이해하자. ^_^;;) 여자친구에게 키스도 못하고 어버버- 하는 남자, '내가 갖자니 아쉬운 게 많고, 남 주자니 아까운 애인' 취급 받으면서도 우물쭈물대는 남자.. 현실에서 마주치면 별로 매력 없을 거 같지만;;; (리드하는 남성분이 좋습니다요;;♡) 뮤지컬 <싱글즈> 속 '정준'은 너무 귀여워서 마음 속으로 "내게로 와-"를 외치고 말았다!!!

어쩌면 그런 세련되지 않은(?) 모습 속에 평범한 우리들이라면 모두 하고 있는 고민들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영화 <러브앤트러블>의 게이친구처럼, 곁에 두고 싶은 편안한 친구. :p




'수헌'역의 배우 '홍희원'에게는 사실 그리 강렬한 인상이 남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역할 자체가 반듯하고 젠틀해서 특별히 튀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 친구관계인 다른 세사람의 비중이 좀 더 크기도 하고... 그래도 훤칠한 외모, 다른 역할 못지않게 적재적소에 터트리는 개그(?) 연기는 일품이었다. 더블 캐스팅인 앤디가 과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쪼금 걱정되기도 했다. 노래도 꽤 잘해야 하는 배역이던데 말이지... -_-a (앤디, 미안;)

3. 일당백 조연 배우들 & …

<싱글즈>에는 주연급 배우가 4명이나 되기도 하고, 또 거의 네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기 때문에.. 공연에 조연 배우가 4명이나 등장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소극장 공연에서처럼 온갖 빈틈을 메꿔주는 '멀티맨'이 아니라, 공연 자체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역할로.

물론 기본적인 멀티맨 역할도 하고 있지만, 단순히 상대역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 뮤지컬 <뮤직인마이하트>에서 주인공의 상상 속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 네 명의 주인공의 마음 속을 대변하는 천사와 악마가 되기도 하면서, 멋진 코러스와 댄스로 보다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준다.

얼마 전 관람한 <사랑은 비를 타고>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연출. 공연 규모의 차이도 있을테지만, 퍼포먼스가 거의 없고 '(대사 대신으로) 노래'를 집어넣은 <사비타>는 조금은 정/적/인 느낌의 뮤지컬이었다. 반면, <싱글즈>는 보다 화려하고 풍성한 볼거리가 있다. 룰루랄라!

요즘 계속 (장면 전환이 적은) 소극장 공연 위주로 봐서 그런지? 한 가지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무대장면을 전환할 때마다 암전상태가 된다는 점. 불 꺼질때마다 박수를 치려니 나중에는 좀 귀찮아져서 가만히 있게 되었다. -_-; 거의 주연급 배우들의 솔로곡 하나 끝날 때마다 암전이 되었던 거 같다. 횟수가 꽤 자주여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박수를 치지 않았다(...)

사족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뮤지컬 넘버들이 대중가요와 유사한 풍이라고 느껴졌다. 전통적인(?) 뮤지컬 노래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 배우들의 가창법이 또 카랑카랑하니 시원하게 쭉쭉 잘 뻗어나가는 스타일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대형 뮤지컬과는 규모에서도 차이가 있고, 내용도 현대적이기 때문에 차이가 느껴지는 건 한편 당연한 일이기도 할거다. 확실히 공연문화가 많이 다양해진 것 같다. 어쨌든 뮤지컬 넘버들은 신나고 즐거웠고, 또 듣기에 편안했다.

4. 그래서.. 내용은?

그러고보니, 뮤지컬 내용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도 봤고 (또 소설에 대한 인상도 강렬하게 남아있고) 영화 <싱글즈>도 본 탓인지, 다른 것들이 더 눈에 잘 들어온 거 같다. 어차피 원작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삼 이마를 탁- 치면서 '29살의 어정쩡함'을 깨닫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좋은 원작을 가지고 있는 뮤지컬 공연이니만큼, 줄거리의 완성도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좋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소설 <29살의 크리스마스> 보다는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운 듯 보였지만, 뮤지컬에서의 표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시야는 조금씩 넓어지지만, 그만큼 꿈을 갖기가 더 어려워진 나이를 웃음, 흥겨움과 함께 적절히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사회 초년생의 열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직까지는 힘을 내서 세상과 맞서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라고 하니, 좀 거창한 느낌인데. ㅎㅎ 뭐, 그런 얘기다.

총평을 하자면, 29살 즈음에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고민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뮤지컬.. 정도?
주인공들의 고민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했기에,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

아낌없는 별 다섯! 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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