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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공기가 온 몸을 둘러쌌던 지난 금요일(아아, 정말이지 아스팔트 위에서 그대로 구워지는 줄 알았다. --+),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픽사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전'을 다녀왔다.

난 픽사의 모든 작품을 관람했고, 매번 만족하면서 극장을 빠져나왔던 픽사 애니메이션의 "팬"이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대개 어린이와 함께 온 엄마(평일이었으므로) 또는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어린이와 엄마 커플 및 단체는 교육을 위해 찾아 왔을 테고, 젊은 사람들은 연인이거나 무리들 혹은 나처럼 혼자 찾아온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픽사라는 이름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혼자서라도 찾아와서 전시회를 관람하던 그들도 나와 같은 픽사의 big fan 이었겠지? :)

그럼에도 솔직히는...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수년전, 비슷한 컨셉(?)의 지브리 뮤지엄(도쿄, 미타카)을 방문했을 때 전시물 자체에는 깊은(...) 감명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뮤지엄의 작품들이 '별로'였다기 보다는 심오한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내공이 '별로'였기 때문일거다. 때문에 이번 픽사 전시회에 대해서도, 일단 픽사의 팬으로서 꼭 가봐야겠다는 의무감(?)은 있었지만 전시물에 대해서는 기대 반 의문 반이었던 거다.

그리고 아쉽게도, 전시회는 기대했던 것 이상은 아니었다. 지브리 뮤지엄과 비교해서도.. 조금 부족한 듯 보였는데. 전시회 자체에 대한 느낌은 그냥 별 두 개 정도다. 그나마 반 쪽짜리 하얀 별을 하나 더 가져다 붙인 것은 입장료가 무려 14,000원이나 했기 때문. 비싼 돈 주고 다녀온거니..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됐다. -.-; 내가 무식해서 전시회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찝찝함도 더했다.

전시회장을 찾기 전 인터넷의 관람 후기를 몇 개 읽어보고 갔었는데... 대부분 젊은 엄마들이 작성한 거였다. 사람이 많고, 스태프가 불친절하며, 한국어 가이드 기기를 받기가 어렵다는 내용. 혹은 그저 무난하게 좋은 전시회였다 정도. 사실, 다녀와서는 뭐가 그리 좋았을까 의문을 갖기도 했다. 픽사의 팬인 젊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이게 과연 애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전시회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엄마들 후기에는 전시물들의 위치가 높아서 어린이들이 관람하기에 어려웠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보다 어른 관객에게 어필했듯, 이 전시회도 온전히 어린이를 위한 것은 아닌 듯 했다. 전시회가 상당히 예술적(artistic)이었거든.

어쨌든 기왕이면 사람이 조금이라도 적을 때, 한국어 가이드 기기를 챙겨 들고서 관람하고 싶었기 때문에 개장 시간에 맞춰서 갔다. 개장은 11시부터고, 난 12시가 조금 안 되서 입장했다. 전시관 바로 앞에서도 잠시 헤매느라 결국 그 시간쯤 입장할 수 있었다. 관람시간은 2시간 정도 잡으면 될 듯. 나도 천천히 돌아보는데 3시간이 좀 덜 걸렸던 거 같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왜 별이 두 개 반인지 하나씩 들여다보겠다. ㅎㅎ

불친절한 스태프가 대여해준다는, 기기 개수가 충분치 않아서 확보하기 어렵다던 문제의 그 한국어 가이드 기기는 일종의 프로모션이었다. 음악, 동영상, DMB를 즐길 수 있다는 KB카드에 한국어 해설 동영상이 담겨있는 것. 전시회측 직원이 아니라 KB카드 직원이 나와서 대여를 해 주고 있었고, 친절하지 않은 건 맞다. 12시쯤 입장했으니 그리 지쳐있을 시간도 아니었는데, 좀 무뚝뚝하다고 할까.

신분증을 주면 동영상을 재생해서 넘겨준다. 기기 설명법은 아예 말해줄 의향조차 없을 뿐 아니라, 조작부를 만지지 말라고 한다. 재생해서 넘겨주는 첫 2개의 동영상은 KB카드 홍보 동영상이다. 그 이후부터 19개의 전시물 관련 설명이 쭈욱 이어지는데, 조작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모든 동영상을 한꺼번에 본 후에 기억을 더듬으며 전시물을 관람하라는 뜻인지? 전시장에 들어가보면, 기기에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전시물 옆에는 헤드폰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게 상당히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다. 전시장을 돌다가 헤드폰 표시가 보이면 그 때 그 때 해당 동영상을 찾아서 볼 수 있도록 해줘야 '친절'한 거다. 아예 재생을 해서 넘겨주고, 조작법조차 알려주지 않는 건 아주, 매우, 상당히 지들의 편의대로 대여해주는 거다.

처음에는 이 한국어 가이드가 일부 개별 전시물에 대한 설명인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받은 대로 이어폰을 끼고 돌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내가 보고 있는 작품과 전혀 다른 설명이 나와서 되려 헷갈린다. 난 '인크레더블' 작화를 보고 있는데, 가이드 동영상은 '토이 스토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이다. 결국 난 조작법을 스스로 알아낸 후에, 헤드폰 표시가 있는 전시물 앞에 도착한 후 그 때 그 때 찾아서 보는 방법을 택했다. 참고로 동영상 리스트가 죄다 mp1, mp2 ... 이런 식이라서 이것저것 눌러보고 찾아야 한다. 나름 관람객들의 이동방향에 맞춰 순서대로 넣어둔 거 같긴 한데,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

그리고 뭣보다도.. 그 가이드라는 녀석이 그리 쓸모있지는 않다. 이게 있어서 더욱 유익한 관람이었다기 보다는 없어도 큰 상관은 없었겠구만의 수준.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참고하는 게 좋긴 하다.  에드나(인크레더블) 그림 앞에서, 에드나의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 몇 번의 수정을 거쳤다. 지금이 최종 디자인이다. 뭐 이런 거 설명해준다. -.- (동영상은 개별 전시물에 대해서 1~2분 가량 설명해줌)

사실 그보다는 EBS에서 방송한 픽사 특집 다큐 2부작 - "다큐10 - 픽사 스토리, 3D 애니메이션을 향한 도전" - 을 보고 가면, 보잘 것 없는 가이드보다는 훨씬 유익할 거다. (EBS에서 다시볼 수 없으므로 각자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해봐야 함)

전시물은 대부분 아티스트들의 손그림, 스토리 보드, 캐릭터 및 배경 디자인, 캐릭터 조형물 등이다. 그 외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보여준다는 조트롭(Zoetrope), 픽사 초기의 단편영화 5편, 여러 디자인화를 현란하게(?) 엮은 아트스케이프(디지털 미디어)를 볼 수 있는 전시관내 작은 상영장이 있다.

먼저, 단편영화는 픽사 특유의 재치가 묻어 나서 재미있었지만.. 초기작품을 보여준다는 정도의 의미였으므로 조금 아쉽기도 했다. 특히, 지브리 뮤지엄에는 관람객들을 위해 별도의 단편영화(고양이 버스, 약 2~30분 분량)를 제작해서 보여주는데, 그것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특별 제작했다는 상영물은 '아트스케이프(artscape)'였는데, 이름에서도 살짝 느껴지듯이 좀 '아트'해서 -.- 감상이 단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예쁘네, 멋지네, 볼 만 하네 이런 수준으로...;; '아트'에 대한 개인적인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픽사 애니메이터들의 손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전시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아트'하다고 느꼈다. 3D로 제작하기 전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 및 색감을 알아볼 수 있다는 2D 배경 디자인화 같은 경우에도... 열심히 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컬러풀 하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기도 했다. (크흑)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는 조트롭이 있는데, 지브리 뮤지엄에서 보고 픽사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돼있다. 왠지.. 다시 한 번, 아아~ 지브리 뮤지엄이 좀 더 괜찮았어... 하고 생각하고 말아버린 부분. ㅎㅎ 수첩 끄트머리에 조금씩 동작이 달라지는 그림을 그리고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듯이, 입체적인 조형물을 원 안에 세워놓고 빠르게 회전시키면 (+ 조명효과) 3D 애니메이션으로 보이는.. 그런 거다.

시간이 아주 넉넉하다면 '인터랙티브 키오스크'에 자리 잡고 앉아, 픽사 직원들의 설명을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인터랙티브 키오스크'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원리 등을 설명한 동영상이 있는 컴퓨터 몇 대가 놓여 있는 곳이다. 한 5대 됐나? 간단한 스케치가 3D로 변화하는 과정, 애니메이션에 소리를 입히는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하나하나 다 클릭해서 보면 좋았을텐데, 각 카테고리에서 한 개 정도씩 본 후 일어섰다. 여기가 전시회장에서 가장 '교육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은데... 뭐, 그렇다고 무진장 재미있는 건 아니고. 그 날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간 탓에 보고 있으려니 살짝 잠이 오는 듯 해서 일어났다는. ㅎ EBS 다큐 보고 간 것도 있고 해서. ^_^;;

꼼꼼히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싶었는데... 한 바퀴 돌아 출구가 바로 앞인데도 전시장을 떠나려니 뭔가가 엄청 허전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역시 나의 내공부족이 문제였을까? 아님, 전시회라는 게 원래 그렇게 큰 감명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지금도 뭔가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빠져 나오니 아주 작은 기념품샵으로 연결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전시회보다 더욱 실망이 큰 기념품샵이었다. 지브리 뮤지엄에서는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살 만한 걸 고르기가 참... 전시회 도록이 개중 괜찮아 보이긴 했으나, 캐릭터 제품을 사는 것처럼 이뻐해주긴 힘들 것 같아.. 그저 보관만 할 듯 하여 패쓰했다. 토이 스토리부터, 몬스터 주식회사, 나모를 찾아서, 월E까지 귀여운 캐릭터들이 넘치는 구만.. 기념품샵의 캐릭터들마저 '소비지향적'이라기 보다는 '예술적'인 느낌이 들었다. 완성된 캐릭터의 모습보다는 작화 느낌이 풍기는... 뭐, 오히려 그것이 전시회 기념품의 포스를 강하게 풍기는 지도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좀 심심한게.. 미국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뭐든 상품화해서 잘 파는 일본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마지막으로.. 들어갈 때 못 본 몬스터 주식회사 커플이 전시되어 있길래 기념촬영을 하고 빠져 나왔다.



이제와서 팸플렛을 보니, 요렇게 써 있다.
"애니메이션 뒤에 숨겨진 아티스트들의 온기, PIXAR의 예술작품들을 국내 최초로 공개합니다."

음, 예술적인 게 컨셉이라는 건 분명하고.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기획했다는 군요..) 단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전시회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픽사의 팬이라면 어쨌거나 한 번쯤은 볼 만 할거라 생각되고,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아주 의미가 큰 전시회가 아닐까? 싶지만.

이것저것 투덜거리긴 했지만.. 캐릭터 손그림이 참 귀여웠던 거 하나만큼은 지금도 기억난다. CAR 주인공의 귀여운 표정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데.. 왜 그런 걸 기념품으로 제작해서 팔지 않는 거야? 스티커 같은 걸로라도 팔면 좋잖아! 에이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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