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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산다는 것 (책 정보)
고종석 등저 / 호미 출판사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완전 몰두에서 읽은 책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기도 했고, 원래부터 사회학을 포함해 이 쪽 관련 이야기들을 좋아하다 보니,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게 매우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게으름 그만 피우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보다는 공개 일기장과 같은 개념이지만, 내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기 위한 블로그를 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요 몇 년간 순간적인 재미와 웃음(주로 TV 버라이어티)에 몰두하느라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되고 해서, 책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백수로 지내는 동안 책을 열심히 읽자는 계획도 세웠다. (여전히 버라이어티와 드라마에 빠져 지내고 있긴 하지만-_-)

하지만, 뭣보다 '읽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건, 글질을 할 때이다. 꽤 오랫동안 좋은 글을 멀리하고 지내다 보니 흉내내는 것 조차 어렵다고 느낀다. 수려한 말빨을 자랑하는 다른 유명한 블로거들을 글을 읽을 때면 더더욱 반성하게 되고. 회사를 그만두고, 몇 권의 책을 읽긴 했지만... 번역서 위주의 가벼운 소설이어서, 문장 자체에 감탄할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기자로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자들의 글을 엮은 것이나, 문장이 깔끔하고 읽기 편하다. 좋은 글쟁이가 되려면, (다독을 포함하여)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책의 내용은 '시사저널' 사태때문에 강제로 실업자(?)가 된 前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저널 기자로서 살아온 지난 생활에 대해 엮은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란,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기사를, 시사저널 소유주인 금창태 사장이 취재기자 및 데스크 등 편집국 모르게 인쇄소에서 몰래 덜어낸 사건을 말한다. 삼성 X-파일 사건으로 피소되었던 MBC 이상호 기자도 말했다. (관련 기사)  "우리사회의 공적 기능들이 진정 독립해야할 대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이제 자본권력"이라고. 우리는 슬프게도 자본이 언론을, 여론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이 언론만 제 손안에 넣고 있을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거대자본은 이미 '법'도 제 손 안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관련 기사)

* 시사저널 사태 관련 기사

前 시사저널 기자들은 현재 [시사IN]이라는 시사주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시사IN]의 캐치프레이즈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이다.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와 닿는다.

<법구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불어 흩어버리면서 자기의 허물은 투전꾼이 나쁜 패를 감추듯 한다." 남의 허물은 쉽게 들추면서 자기 허물은 감추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남의 허물을 들추는 것이 직업인 기자들임에랴. 그럼에도 시사저널에서 만난 나의 데스크들은 자신의 허물을 애써 감추려 들지 않았다. 시사저널 데스크들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시사저널은 그래서 강했다. by 김은남 기자

기자들이 '정직'해야함이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순도 100% 정직할 수 있는 (주로 일간지) 기자가 얼마나 많을지 사실 좀 의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농담이라며 말한다. 기자들 중에는 '티켓팅'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기업에서 비용을 대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홍보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니까, 비행기는 많이 타 봤어도 티켓팅 해 본 적 없고, 입국 신고서 한 번 써 본 사람이 없다고. 뭐... 반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아주 쓴 맛이 나는 농담이지만.

어느 프리랜서 기자는 그랬다. 기자로서 대접만 받고 살다가, 어느 기업의 이사로 재직하게 되면서 기자를 접대할 일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본인이 기자 시절에 접대 받으며 드나들었던, 좋다고 생각했던 음식점으로 기자를 데려갔단다. 그리고, 그제서야, 본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간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고 다녔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아마, 일선의 많은 기자들 중에는 아직도 본인이 얼마짜리 밥을 대접 받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하하호호.

책 내용 중에는, 십수년전에는 인터뷰를 마치면 인터뷰이(대상자)가 기자에게 촌지를 건네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업인이고, 정치인이고 할 거 없이.

199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1992년만큼 우리 언론이 추악하던 때도 없었다. 도서관 2층 정기간행물실에서 나는 6종 이상의 일간지를 날마다 읽었다. 그리고 시사저널을 봤다. 차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아가, 권력욕에 불타는 언론사일수록 현실을 오도하고, 논점을 전도하는 신문일수록 독자도 많고 영향력도 엄청나다는 불행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해 연말에 '초원복국집 사건'이 터졌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부산 기관장들이 모여 부정 선거를 획책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지만, 조선일보는 초원복국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는 묻지 않고 국민당의 '도청 행위'를 따지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그리고 민정당의 후신인 신한국당 후보 김영삼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세상 인간들은 그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결국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그 곳의 내전과 기아에 대해 논한다.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사실들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결국 따지고 보면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미디어가 거짓이라면? 그럼 한 인간의 우주 전체가 허상이 되는 것이다
. by 신호철 기자

한 인간의 우주는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좋든 싫든. 선택의 여지 없이.
우리는 우리들의 세계관을 그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도덕성 및 정의관에 맡겨야 한다.
조, 중, 동의 문제점을 '정치면만 제외하면 섹션이 풍부'하다며 눈감아줘도 되는 게 아닌 이유가 여기 있는 거다.
그들이 사회정의보다는, 자사의 이해(利害)에 따라 행동하는 한, 절대 모른 척 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흔히 주간지는 속보성이 아니라 심층성으로 승부를 건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심층성이란 게 현장과 유리돼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속보 기사든 심층 기사든 기사의 출발은 현장이라는 것, 이 같은 기본을 김국(김 훈)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김국은 현장을 떠나 탁상에서 논한 글을 '기사'라 우기는 행위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사실(fact)없이 주의 주장만 나열해 놓은 기사를 김국은 주저 없이 '쓰레기'라 부르곤 했다. 때문에 부실한 취재를 '이빨'로 때운 원고를 김국에게 제출할 때는 나 스스로 면구스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by 김은남 기자

이런 '쓰레기'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인터넷 연예정보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일간지에서도 현장 취재가 없거나, (주로 기업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제 불만제로에서 방송한 월출농원은 모 주간지에 오픈마켓 성공 사례로 실리기도 했더라. 인터넷 검색만 좀 열심히 해 봤어도 이런 치명적인 실수(?)는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들이 행복하다.' 시사저널에 들어온 직후, 문정우 선배에게 들었던 이 말은 내 기자 생활의 '나침반'이 되었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하고 기사 써 봐라. 그걸 읽는 독자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 거야. 당신이 그렇게 고생해서 취재하고 쓴 기사라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by 안은주 기자

저 주간지에서 월출농원 기사 읽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여 실제 주문까지 한 독자는 그저 불행한 기분 이상이었을 거다. 분노하지 않았을까?...

대학원까지 포함해 신문방송학을 6년이나 공부한 나는 취재 현장에서 저널리즘 이론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저널리즘 이론의 하나인 '게이트 키퍼' (문지기) 이론에 따르면, 뉴스를 선택하는 1차 문지기는 기자, 2차 문지기는 데스크편집장인데 내가 목격한 뉴스 선택의 1차 문지기는 기자가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이 가공한 사실이 전부인 양 보도되었다. by 고제규 기자

일방적으로 '들은' 내용은 다 기사화할 것이 아니라, 취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내가 본 어느 기자는, 본인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전화로 후배 기자에게 이것저것 알아보라고 한 다음 내용을 취합해 기사를 썼다. 뭐.. 후배 기자가 현장을 뛰었다고 볼 수 있는건가? ...글쎄다. 쓰다가 막히는 부분은 또 어딘가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이어 쓰고 그러더라. 누군가가 가공한 사실이 전부인 양 보도되는 하나의 경우가 아닐른지.

참고) 부실한 취재로 쓴 기사 관련 후속 보도 몇 건
- 7/26 다음 첫 화면 블로거뉴스 :"초등생 재치로 성추행범 검거" 보도, 사실은
- 오마이뉴스, 언론이 왜곡한 댈러스 한인 부부 사망 사고: "영어 미숙해 일어난 참변"이라고?

1991년, 국제부 기사 3년차에 접어들 시점에 걸프 전쟁이 터졌다. (중략) 그 생생한 현장을 미국의 CNN 방송이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참으로 희한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국내 언론은 서방의 주요 통신사들이 전하는 생생한 전황을 육하 원칙에 입각해 충실하게 전달했다. 팩트의 충실성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진실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특히 미국과 서방의 관점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보도하면서도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후세인과 아랍의 입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즉, 팩트에 충실했다고 해서 저널리즘 본연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방송과 일간지로 이루어진 한국의 주류 매체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였던 것 같다. 속보 위주, 무리한 특종 경쟁, 주류적 관념을 중심으로 결속된 일종의 카르텔 같은 배타주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있기 전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by 남문희 기자

울 신방과 교수님 말씀이, 신문방송학 수업을 한 학기 정도 듣고 나면, 대부분 학생들이 언론을 더 이상 객관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셨다. 그렇다. 언론은 팩트를 전달하긴 하지만, 어떤 팩트를 전달할 것인가를 '선별'하기 때문에, 이미 그 단계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조, 중, 동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선별기준이 공중 또는 공익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

경찰서로 들어가는 길에 '사수' 이문재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이선배는 수습 기간 내내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 문장의 주용성과 겸손한 취재 방식이다. 그 때만 해도 경찰 서장실은 두 손으로 열지 않고, 발로 차고 들어간다는 말이 언론계에서 통하던 때였다. 그런데 시사저널은 달랐다. 이선배는 기자는 질문할 자유만 있지 어떤 특권도 없다고 강조했다. 노숙자든 대통령이든 누구에게든 질문할 자유가 기자들의 특권의 전부이지, 다른 특권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질문도 어깨에 힘 빼고 겸손하게 하라고 했다. 다른 언론사에 입사한 친구들은 선배들에게서 경찰들과 한 번씩 대거리한 것을 무용담처럼 들었다는데, 시사저널에서는 버러야 할 못된 습관으로 가르쳤다.
by 고제규 기자

모든 기자가 다 나쁜 놈, 자기 이윤만 챙기는 놈은 아닐 테다. 혹, 그렇게 보이는 기자들도 결국은 여느 아버지들과 다름 없는 생활인, 월급쟁이이기 때문일 거라는 안쓰러움은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기자의 특권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서머셋 몸의 '서밍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빌어, 쉽고 깔끔하나 문장의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보도자료를 받아 쓰는, 기자는 과연 알고 썼는지 궁금한 기사는 정말이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이해하는 일, 자신부터 납득하는 일이다. ... 독자에게 자기가 쓴 글의 뜻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는 작가들에 대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경제전문 장영희 기자의 글 중 재인용)

시사IN 기자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기자들이 '정직하게' 기사 쓰는 것 외에는 다른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지만... 뭐, 언론이 가진 힘 때문에라도 그리 쉽진 않을 거 같다. MB는 미리 준비한 듯 언론사에 자기 사람 심느라 바쁘고.

<기자로 산다는 것>

그들의 지난 이야기는 기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기도 하다.
기자를 꿈꾸는 자들 중에, 부귀영화를 바라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기자들 또한 언론'기업'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므로 홀로 독야청청하기를 고집하면서 살아남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더라도 늘 초심을 잃지 않으려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독자로서의 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고제규 - 이은석 사건
김훈 국장 - <한겨레21>(2000년 9월 27일/제327호) '쾌도난담-위악인가 진심인가'
http://pupapa.egloos.com/3717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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