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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나마;) 자주 읽는 편인데. 여행 가서 연애한 얘기는.. 잘 없었잖아? 얘기가 되더라도 전체 여행기의 일부로 취급될 뿐, 그 자체가 주제가 되는 일은 잘 없으니까. 뭔가 좋은(?) 글은 아닐지언정,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선택.
어쩐지 흥청망청(?) 연애한 얘기라도 있을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분량의 대부분은 한 영국남자와 썸과 짝사랑 사이에서 헤매인 사연. 대화체를 많이 써서 그런지, 글 자체를 꽤 쓰는 편이라서 그런지, 연애 이야기를 할 때면 '칙릿'이라도 읽는 것 같은 기분. 뭐... 나름 실화라고 알고 보니까 썸인지 밀당인지 짝사랑인지 흐릿하게 이어지는 관계라도 그냥 보는 거지, 이게 처음부터 소설이었으면 재미없는 연애이야기이긴 했을 거다. 딱히 드라마도 없고.
여행기라는 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쓰는 거기 때문에, 전문 작가가 쓴 게 아닌 이상 글 맛이 좋은 여행 에세이는 사실 잘 찾기 어렵다. (특히 블로그 등장 이후..) 또, 장르 특성상 글맛이나 표현에 신경쓰기 보다는 겪었던 일이나 그 과정에서 얻은 본인의 생각을 옮기는데 제한되는 경우도 많고.
이 책의 장점이라면, 가벼운 소설 - 앞서 '칙릿'이라고 말했듯 - 읽는 것과 같은 정도의 글맛은 있다는 거다. 비유도 많고, 상황을 설명하거나 경험을 드러내는데 있어 표현에 신경을 쓴 글. 근데 딱 거기까지. 좀 심심한 '칙릿' 한 편 본 듯한 느낌. 책에서는 차마 말 못 했겠지만, 그래서 결국 얘네 잤을까? 안 잤을까? 하는 궁금함도 잔상처럼 남고.
거슬렸던 점은, 내용보다는 편집 부분이긴 한데, 특히 썸남과 대화 부분을 굳이 영어 문장을 병기한 것과, 적당하게 풀어서 쓰면 그만인 별 것 아닌 표현들을 외래어로 적은 후, 지저분하게 뜻 풀이를 죄다 윗 첨자 처리한 것. 영어가 딱히 어려운 것도, 표현이 좋은 것도 아니더만.. 보기에도 읽기에도 지저분하게 왜 이런 식으로 편집했는지, 정말 미스테리. "한국 노동자들을 워킹머신이라고들 불렀다"는 간단한 문장에, 굳이 '워킹머신'이라고 쓰고는 그 옆에 길~게 위 첨자로 'Working Machine 일하는 기계'라고 붙여 둠. "한국 노동자들을 일하는 기계라고들 불렀다"라고 써도 되잖아. 도대체 여기에 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으면 안 될 만한, 불가피한 맥락이 어디있냐고. 영어 단어가 너무 '적확한 표현'이라서 대체 불가하거나, 풀어쓰면 오히려 너무 길어진다거나, 또는 고유 명사로 살려줘야 할 이유가 있거나 해야 할 거 아녀!! 책 곳곳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외래어 표현과 지저분한 위 첨자가 드글드글하다.
서문에 보면, 작가나 기자들의 여행기는 너무 멋있기만 해서, 보통 사람들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한다. 2010년에 나온 책이니.. 그 때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를 접하는 게 흔하지 않았을 순 있겠다. 다만, 요즘에는 책 뿐 아니라 TV에서도 온통 여행 이야기를 해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딱히 희소한 가치를 인정 받기는 어려울 듯. 오히려 이 책은 좌충우돌 여행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장기간 머물면서 외국 남자와 썸 탄 내용이 주라서,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이게 좀 희소 가치가 있을 듯. 정작 서호주 여행한 이야기는 찔끔? 들어가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의외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작가였다. 생각이 많고, '나'와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 나와 (생각이) 닮은 점도 언뜻언뜻 보였고, 그래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다. 다만, 이 아이는 10년 전에 했던 고민을.. 나는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일까.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후하게.. ★★★
(메모할 생각이 없다가.. 뒤늦게 이거라도 남기자 싶어 표시하기 시작. 안타깝게도 작가의 사유에 공감했던 부분을 모두 기록하지는 못함)
유명한 데미안의 말처럼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인간이 열망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이해받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알을 깨고 자신을 분명히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작일 것이다. p30
'여행을 떠나기 전, 위대한 자연 속에서 내 인생의 답을 얻고자 했었다. (중략) 그동안 내 안에 답을 두고 숱한 시간을 헤매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고요히 멈춰서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p105
'당신은 어떤 삶을 상상했지? 여긴 연극 무대가 아니잖아! 끝내고 싶다고 해서 막만 내리면 되는 줄 알아? 게다가 연극이 그렇게 지독했던 건 바로 당신 탓이야! 나 역시 무기력하고 못난 인간이야. 사람은 자기 안에 정체되어 있는 커다란 덩어리를 갖고 있지. 삶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잃고 체념하는 순간 그게 밖으로 나오는 거야.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물일 뿐이야.'
- 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 열린책들, 2001, p204
'21세기에,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연예인 누가 누구를 사귀었는지, 코 성형은 어디가 최고인지, 결혼한 친구네 집이 몇 평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의 룰이다. 만날 때마다 몇 시간씩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결혼이고 성형수술이고 경험해보기도 전에 지쳐 늙어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자신'이 빠져버린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왔을 때 씁쓸한 공허함을 느끼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p211
'정의하는 것은 곧 한계를 지우는 것'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황금가지, 2008,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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