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림공원은 1971년 창업인 재암 송봉규선생이 10만여평의 황무지 모래밭에 야자수 씨앗을 뿌리고 가꾸기 시작하여 오늘날엔 야자수 물결치는 세계적인 식물의 낙원이 되었다고 홈페이지에 써 있다. ^^;
한림공원은 개인이 만든 공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넓다. 또, 인위적으로 만든 공원이 얼마나 좋을까 의심했었는데, 그게 미안해질 정도로 사람의 손으로 예쁘게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입장료가 7,000원이라 엄마도 나도 들어가면서는 좀 비싸다 생각했는데, 한 바퀴 쭈욱 돌아보고 나오면서는 그만큼 받을 만하다고 여겼다.
들어가는 공원 입구에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 앞에 비빔밥 모형이 전시된 걸 보고는 엄마가 여기서 밥을 먹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충분히 배가 고플 시간이긴 했지만;; 왠지 이런 관광지 앞에 있는 밥집이 영 미덥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데는 맛 없다고 주장하며 공원부터 둘러보고 나서 맛집을 찾아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래도 계속 칭얼거리신다. -_-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핫바를 하나 사드렸다. 이런 거 말고 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서도, 일단 배가 좀 차니 좀 나아 보였다; 참고로 나는 소시지바를 먹었는데, 핫바가 훨씬 맛있다. -_-
이 날 저녁을 하두 비싸고 맛 없는 집에서 먹어서 제주도에 머문 내내 엄마랑 둘이 후회를 했는데, 포스팅하느라 지난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차라리 이 한림공원 입구 음식점에서 먹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밥 먹어보신 분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시길 희망해본다. ^^;
입구로 가 표를 보여주니 직원이 ‘아열대식물원’ 쪽으로 들어가라 한다. 공원 지도를 보니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한 바퀴 도는 것 같아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열대식물원엔 다양한 모양새의 선인장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불행히도(?) 시작부터 관람로를 잘못 따라 들어간 바람에 입구 앞 온실만 한 서너번 드나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아열대식물원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어져 있는 줄 알고 쭉 따라 돌았는데… 아니었다. 아열대식물원 쪽으로 다시 나와 옆의 큰 길을 따라가니 거기가 ‘야자수길’이었고, 야자수길부터는 아열대식물원을 제외한 다른 6개 테마가 있는 구역을 길 따라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열대식물원을 돌아다니던 중 한 남자가 애인에게 쿠사리를 먹는 걸 목격했는데, 아마.. 그들도 아열대식물원에서 아예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모르고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가 “지도 없이도 다 찾아갈 수 있다며~ 이게 뭐야~”라고 한 걸로 추측해 보면. :p
처음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행의 목표로 세웠던 것 중 하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3대 스팟spot을 모두 돌아보는 거였다. 하지만 한라산은 현재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가 현재 휴지기인지라, 또 장마철에 가는 것이라 일찌감치 마음을 털었고, 성산일출봉과 만장굴이라도 꼭 가봐야지 했었다. 그러다가 한림공원 안에 굴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후엔, 한림공원 가서 굴 보게 되면 만장굴은 패쓰하기로 마음을 또 바꿨다. ^^;
어떤 관광지에도 ‘반드시’ 라는 단서는 달지 않았다. 그 날 그 날의 일정에 따라 다음 날 일정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그런 유연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한림공원 입장권을 구입한 순간, 만장굴은 훠이훠이 날려버렸다. 훗훗.
그리고 야자수길을 따라 신나게 ‘협재∙쌍용굴’을 향해 걸었다. 굴 입구에는 매점이 있는데, 물 한 병과 귤과자를 한 봉지 샀다. 핫바 먹고도, 먹은 거 같지 않았던지 힘이 없던 울 어머니. 왔다갔다하면서 귤과자 한 봉지(3,000원)를 열심히 드시더니 공원을 빠져나갈 때쯤엔 나보다 기운이 좋으셨다. -_-; 나도 한 두입 맛만 봤는데, 맛이 꽤 좋았다. 또, 유기농이다. 한 번쯤 맛 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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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입장 전 잠시 쉬면서, 시원한 물을 맛있는 표정(?)으로 음미 중인 울 엄마. 엄니 말씀에 따르면,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도 제주산 먹거리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에서 똑같은 귤과자를 파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본다. 맛이 궁금하신 분에게 참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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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안에는 (위 사진처럼) 그냥 봐서는 뭔지 모르고 지나칠 관람객들을 위해 위와 같이 곳곳에 안내문을 설치해두었다.
공원은 전체적으로 관람하기 편안하도록 사람의 손길로 잘 다듬어져 있었는데, 그게 참 잘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테두리를 두르고, 안내문을 설치한 게 인위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100% 야생환경이었다면 불편했을 거다. 도시 관람객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자연을 느끼기에 좋은 장소로 추천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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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람의 손길이 닿은 모습이지만, 보기 좋은 어우러짐. ^_^
협재굴에서 쌍용굴로 넘어가는 길에 마주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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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테마는 ‘제주석∙분재원’
석, 분재라는 이름과 대충 사진을 흘려봤을 때는, 이런 데 왜 가나.. 생각했었다. 뭔지 잘 몰랐던 거다. 직접 둘러본 분재원은 경탄할만했다. 어쩜 그리 세심한 손놀림으로 세련된 자태를 만들어놨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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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사진으로 보니 역시 그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위 사진은 전부 석, 분재들로 꾸며 놓은 제주의 돌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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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웃는 얼굴이다. 바위에서 웃는 모습을 찾아내 전시를 하는 센스가 놀라웠다. :)
그렇게 석∙분재원을 둘러보고 나오니, 카메라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었다. 동굴에서 플래시를 많이 쓰면서 파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경고가 떴는데, 그래도 잘 찍히는 것 같아 석∙분재원을 돌면서 이것저것 찍어댔더니 완전히 힘을 잃었다. 출발 전 날,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시켜 놓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첫 날이라 이것저것 마구 찍어대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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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마지막 촬영이었던 하얀공작새. ‘재암민속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기념품샵을 통과해 지나가도록 되어 있다)에 있었다. 공작새가 꼬리를 편 모습을 찍겠다고 두 명의 여성이 철장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혹 이 포스팅을 보고 한림공원을 방문할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있다면, 꼬리를 활짝 편 공작새를 보기 위해 재암민속마을 입구인 기념품샵 앞 공작새 철장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전혀 없음을 참고하길 바란다. 재암민속마을을 돌아 나가면 이어져있는 ‘사파리조류원’에서는 철장을 통하지 않고도 꼬리 편 공작새를 잔뜩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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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한림공원 홈페이지 - 재암민속마을
재암민속마을부터 마지막 테마인 연못정원까지. 정작 카메라가 필요한 곳은 후반부였다. 민속마을은 작지만, 제주 또는 민속하면 떠오르는 것들 – 물허벅, 초대형 하루방, 말,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농기구와 민속놀이 등 – 을 꼼꼼하게 잘 전시해두었다. 엄청 큰 하루방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사진 한 장 못 찍은 게 정말 아쉬웠다. 이어진 곳이 ‘재암수석관’이었던가? 이미 오며가며 돌들을 많이 봤기에 이 곳은 그냥 지나쳤다. 날은 아직 밝았지만 슬슬 저녁때가 되어가는 중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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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한림공원 홈페이지 - 사파리조류원
‘사파리조류원’은 이름을 보고도 뭘 위한 곳인지 감을 못 잡고 일단 들어가봤는데. 말 그대로 ‘사파리’였다. 단지, 곰, 사자, 호랑이가 아니라 공작새가 잔뜩 있었을 뿐. ^^;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를 어슬렁거리는 커다란 공작새. 엄마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공작새가 알아서 비켜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공작새 외에 앵무새 등 몇 종의 새들이 더 있다. 단지 이름을 기억 못할 뿐. 심지어 타조도 있었다. -_- 사진 정말 진짜 찍고 싶었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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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한림공원 홈페이지 - 연못정원
마지막 테마. ‘연못정원’. 사람의 손으로 꾸며 놓은 곳이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위 사진엔 없는데 연못가에는 허리숙이고 머리감는 소년의 동상을 세워놓는 등 재치도 엿볼 수 있는 장소였다. 연못정원에서 출구방향으로 나가는 길에는 토피어리처럼 식물이 곰이나 공룡 등 동물 모양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 둔 장식물(?)도 있다. 아직 식물이 덜 자라 뼈대가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이 멋진 공원이 사람들의 꼼꼼한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장식물(?)이었다.
출구 근처에는 창업인인 송봉규 기념관 – 재암관 이었나? 이름은 가물가물 - 같은 작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들어가보니 한림공원 건립 관련 자료와 미디어 보도자료, 창업인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방명록도 있길래, 즐겁게 둘러보고 기분이 좋았기에 기꺼이 자리 잡고 앉아 한 장 남겼다. ‘카메라가 켜지면 사진도 같이 한 장 찍어두는 건데…’ 아쉬워하며.
헌데!! 오늘 포스팅하느라 한림공원 홈페이지에 갔다가 내가 남긴 방명록을 스캔해서 올려둔 걸 발견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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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원래는 아래와 같은 얼굴이었다.
엄마가 낙서해서 내 얼굴 망쳐놨음.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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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일 자로 그려넣었더니, 눈썹만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 나름대로 눈동자 부분을 그려 넣으려 했던 것 같지만.. 암튼 망쳐놓았다는 거!!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한림공원을 빠져나와 드디어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변이 어둑해졌다. 중문-서귀포가 그리 멀지 않을테니 짐 풀고 잠시 쉬었다가 나가서 저녁을 먹을까 했는데, 그러기엔 울 엄니가 너무 허기져있었다. -_-
관리인 아주머니께 근처에 괜찮은 맛집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베란다에서 바로 보이는 식당을 추천해줬다. 그래도,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이왕이면 나가서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자꾸 아주머니가 맛있다고 한 데 가면 되지 뭘 자꾸 나가려 하느냐면서 이제 막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니.. 충분히 신경질이 날 만 하긴 했다.)
결국 아주머니가 말해준 근처의 D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동네 식당이라 생각하고 갔는데 가격이 관광지 식당이었다. -_- 나중에 보니 거기가 마라도선착장 근처이긴 했다. 서귀포쪽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는 동네는 아니었는데.. 조금 외진 느낌이 드는 동네였는데... 그래도 나름 관광지기는 했던 거다.
갈치조림 2인분. 24,000원...(은 갈치니까 그렇다치고, 고등어조림도 2인분 20,000원이었다.)
손님이라곤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 한참 후에야 나온 밑반찬과 조림. 둘 다 정말 맛 없었다...
조림을 시켰는데, 밑반찬 내올 때부터 센스가 황이더니. 온통 김치 종류에 짭짤한 밑반찬. 조림을 시켰으면 약간 담백한 - 식당에서 많이 내주는 하얀 어묵 무침이라든가... - 종류의 밑반찬을 내줘야 할 것 아냐!
울 엄마가 요리 솜씨가 좋긴 하지만. 울 엄마의 갈치조림보다 몇 배는 맛 없고 밍숭맹숭한 조림. 아아악.
그렇게 맛 없는 음식을 24,000원이나 받는다는 건 정말... 이 식당 절대 가지 말라고 소문을 내기에 충분하지만.
그래도 그리 불친절하진 않았기에, 그들도 밥 벌어 먹고 살아야 하기에.. 식당 이름은 이니셜로 표기했다;;
비싼 돈 보다도 억울한 맛없는 저녁 식사를 하며 얻은 교훈은.. "숙소 아줌마의 추천을 믿지 말자."는 거였다. 쯧.
먹는 둥 마는 둥 밥알 위주로 퍼 먹은 나는 영 입맛이 텁텁한 것이 디저트 종류가 무지하게 땡기기 시작했다.
잽싸게 밥을 먹고 나오면서, 근처에 큰 마트 있냐 물었더니, 작은 마트는 많은데 큰 마트는 서귀포까지 나가야 한단다. 얼마나 걸리느냐 했더니, 초행길이면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옆 자리에 앉은 엄마는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지라 또 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가려면 동네 작은 마트가라며. 20분 정도면 갔다 올 만 하다 생각되었지만, 옆자리가 시끄러워 내비에 '하나로마트'로 검색한 후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출발했다.
제대로 된 불빛도 없는 길을 이리저리 찾아 들어가보니 농협 은행 안에 있는 자그마한 하나로 마트.. 였다. 이미 문은 닫혀 있었고. -_-
에휴-
그래서 다시, 서귀포 이마트를 향해 출발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거리를 몇 가지 산 후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아침 해먹고 설거지 하고 하는 거 귀찮아서, 그냥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을 계획이었으나.. 첫 날, 아무데서나 밥 먹으면 안 된다는 깨우침을 얻고 이후 아침은 전부 숙소에서 먹고 나왔다. (숙소를 다 외진 곳으로 잡아 놔서 근처에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기도 했으니...)
긴 하루가 끝났다.
2008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