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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홈씨어터



소설을 꽤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이 바뀌었는데 - 이야기의 전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 &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면서 영화화 했는지가 궁금해서, 바로 영화도 봄 [소설은 1990년대 초, 휴대폰도 없고 IT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소설에서는 '여자[김민희 役]'와 아무 접점이나 관계가 없는 '형사[조성하 役]'가 오롯이 추적을 담당하는데 반해, 영화에서는 '여자의 애인[이선균 役]'이 메인 추적자라는 점. 평범한 일반인 혼자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도 필요하고,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조성하와 함께 다님. 


소설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여자의 이야기를, 여자의 입으로 듣지 못한 채' 결말이 났다는 점이었는데. 하지만 또, 곰곰 되짚어 생각하니 그때까지 하나 둘 풀어놓았던 여자의 과거를 통해 독자 스스로 짐작하게끔 한 것이 차라리 영리했다, 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결국 소설의 결말은 역시 영리했다, 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 


소설이 원작이더라도, 영화는 영화로써 자기만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인과 만나게 된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에 대해 (소설 속 여자와 비교하면서) 가타부타 하기는 어렵지만.. 영화 속에서 마침내 애인과 마주친 여자가 입을 열었을 땐, 소설이 여운을 남긴 채 끝난 것에 정말로 고마움을 느꼈다. -_-; (물론 소설에 없는 새로운 장면과 이야기가 이어지는 부분이고, 애인의 역할이나 비중이 소설과는 완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암튼.. 난 그냥 그 순간 그랬어...)


영화는, 아무래도 길고 긴 이야기를 2시간여로 압축해서 펼쳐놓다 보니, 뭔가 좀.. 구렁이 담 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연결들이 보이기도 했다. (소설 안 읽은 경우라면, 크게 신경이 안 쓰일 수도 있음..) 다른 어떤 블로거도 지적했지만, 이름을 빼앗긴 여자와 이름을 빼앗은 여자의 접점이 되는, 가장 결정적이며 중요한 연결고리인 '아토피 화장품'도 말하자면 그냥 '형사의 감'으로(?) 알아낸 거고. 


뭐.. 소설은 이름을 빼앗긴 여자와 이름을 빼앗은 여자, 둘의 과거를 하나 하나 더듬어 가는데 반해, 영화는 이름을 빼앗은 여자 쪽에 이야기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걸 할애하고 설명해주기 어렵긴 했을터. 선택된 큰 줄거리 외, 소소한(?) 사연들은 빠르게 지나쳐간다. 


따라서, 소설을 통해서는, 두 여자 모두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가늠할 수 있고, 일정 부분 연민이랄까, 공감할 수도 있는 반면.. 영화는 그런 부분은 좀 약한 편. 그건, 이야기를 집중한 이름을 빼앗은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소설에서는 단순히 범행동기가 되는 '왜'뿐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까지 가늠할 수 있는 사연이 설명되고, 그때 그때 이런 저런 단서들을 던져주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많은 말을 해주지 않는다. 알아서 생각할 수 있도록. 


영화의 경우,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멜로'를 심어놨다;; 뭐.. 애인이 찾아다녔으니까, 아주 부자연스럽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_-; 아무래도 미스테리 & 추리 영화.. 라고 생각하면서 봤기 때문에 더. 그렇게나 찾아다닐 만큼 사랑한 애인이고, 놔줘야된다 싶을 만큼 아픈 과거를 알게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연인들의 선택을 이해 못할 건 아니었지만. 


다만, 그 멜로 드라마를 위해서는 여자가 발각되어야만 했기에, 발각될 수 밖에 없도록(?) 여자가 다음 타깃을 너무 허술하게(?) 인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었음. 그렇게 도망을 쳐놓고는,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도망친 애인과 접점이 있는 사람을 다음 타깃으로 고르다니 말이야.  


멜로씬에 이르러서, 확실하게 깨달은 또 다른 차이점은, 여자를 대하는 추적자의 태도. 소설에서는 제3자나 다름없는 형사가, 호기심에서 랄까? .. '왜 다른 사람으로 살려고 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담담하게 차근차근 좇았고. 그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독자들을 두 여자의 삶 속으로 데리고 가주는 안내자 같은 역할에만 머물렀던 거다. 애인이 직접 추적하는 영화는, 좀 더 두 사람의 이야기 같은 느낌. 말하자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힘은 좀 약해졌다? 같은. 영화로써는 장점일 수도.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엄청 딱딱하거나 읽기 어렵진 않다. 일본 소설답게, 쉽게 술술 읽히지만, 메시지는 분명하게. 


소설을 먼저 읽고, 작정하고 비교하면서 봤기 때문에, 별점을 매기는 건 좀 애매. 여러모로 biased 된 의견일테니. 


그 외, 뱀발 몇 개


1) "꽃중년" 조성하가 너무 '안 꽃중년'으로 나온다. 물론, 퇴물 취급(?) 받는 닳고 닳은 형사 역할인 건 알겠다만. 그래도, 원판이 있는데.. 이렇게 막 생기게 나와도 됩니꺅?! 뭔가 피부도 깨끗하지가 않고.. (그것까지 분장이었길-_-)


2) 영화에서 여자의 나이는 29살. 과거라고 해봐야 대략 10년 전인데. 아무리.. 시골 마을이라고 해도, 너~무 복고복고한 거 아닌가? 여자의 과거 회상씬들은 아니 무슨.. 70년대인 줄. 


3) 참, 애초에 궁금했던.. 시대적 배경의 차이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부분은, 전체 이야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 & 집중하는 과정에서, 각 단서들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방식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한 듯. 어떤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 시대적 배경이 얽힌 부분을 아예 없애버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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