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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차》 12/20 Fin.
p.9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한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다 그렇게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훔친 옷을 입고 다니진 않고, 자기 방 안에서만 패션쇼 하듯 걸치곤 했던 도벽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의 전체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뜨끔했던 문장이라 적어놨다.
도둑질이라도 했다는 건 아니고 -.,-
그냥.. 알 것 같아서. 그런 마음. 혼자 있을 때만 드러낼 수 있는 나 자신. 그런 거.
요즘 좀 심경이 복잡하기도 하고.
--- 이하,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리뷰 -----------------------------------
(구리사카 가즈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뭐 이런 재수없는 새끼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함
장례식에도 바쁘다며 안 찾아오던 놈이, 지가 사정이 생기니 찾아왔다 할 때도 뭐 썩 좋은(?) 인간은 아닌 듯 묘사되어 있었지만
단순히 좋지 않음을 뛰어 넘는, 싸가지 없는 엘리트 놈. 다행히(?) 비중이 높지 않다. 거의, 뭐.. 사건 의뢰만 하고 퇴장하는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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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미스테리가? 추리가? 몰입도가 좋았다던데. 내 경우, 이야기가 엄청나게 흡입력이 있다, 라기 보다는.. 일본 소설답게(?) 쉽게 읽힌다. 술술- 이런 쪽.
잠깐, 생각해본 걸로는, 대체로 군더더기 없이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예술적 감성을 뽐내는 듯한 형이상학적 표현이 없고, 불필요한 미사여구 등 수식어를 한참 늘어놓지도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풀어놓는 스타일이랄까. 지름길만 골라서 간다, 라고 할까? 유독 '미야베 미유키'가 그렇다, 라는 것 보다, 일본 소설의 특징인 듯.
암튼, 몰입도나 흡입력이 대단하지는 않더라, 라는 게 재미없었다.. 와 같은 얘기인 건 아니고.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단서를 놓아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심장이 쫄깃하도록 후다닥 달려야 할 것 같은 호흡은 아니고. 천천히 이끌어주는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잘 따라나가면 된다, 라고 느낄 수 있는 속도. 범인(?)의 정체나 사연도 짠~ 하고 막판에 한 번에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알려줌.
마이너한 이슈이기는 한데, 추적 기간은 짧은 데 반해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아서, 추적 장소가 휙휙 바뀌고 이 사람이 등장했다 저 사람이 등장했다 할 때, 앞서 나왔던 이 놈이 그 놈인지가 파파팍 매치가 안 되어서도 잠깐 한 호흡 정도 쉬어가기도 했다는. (잉? 얘 어느 장면에 나와서 뭔 말 했던 애더라? 이런 거...) 심지어, 여러 날 걸쳐서 읽은 게 아니라 하루 동안 읽은 거였는데도. 일본 이름이 익숙치가 않았숴... 흑
그 밖에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가장 궁금해했던 '결말'이 이 소설 속에는 없었다는 점 -_-;
그녀를 추적해나간 형사(주인공)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추적 과정에서 살짝 살짝 던져 준 몇몇 일화(?)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아픔을 겪었을지를 가늠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한 편으로는, 구질구질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결말이었다고도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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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책을 처음 폈을 때 놀란 건, 1990년대 초반이 배경이었다는 점.
이렇게까지 오래전 소설인 줄.. 미처 생각을 못(안) 했었다. 그래서, 휴대폰도 없고, 딱 한 번인가 삐삐가 언급되고, 주인공은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전화를 사용한다. 추억 돋네. 나 학창시절에도, 엄마 눈치 안 보고 전화 맘대로 쓰려고 카페 가고 그랬었는데. 내가 그러고 살았다기 보다 그런 게 일종의 문화여서, 주말 커피숍에는 중고딩들이 바글바글 시끄러웠다.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없던 시절이었고 -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같은 것도 없었다 ㅋㅋ 파르페가 꽤 비싼 메뉴였고, 파르페를 시켜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해할 수 있었던 그런 시절 ㅎㅎ
동명의 영화는, 휴대폰이 있고 IT 인프라나 각종 온라인 시스템이 상당히 발달한 근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어떤 식으로 변주했을지 궁금해졌다. 소설에서는, 종이 서류를 쓰다가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되어 차츰 컴퓨터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던 시대적 배경도 상당히 중요한 한 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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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한참 파던 게, 대략 2000년대 초반이었나. 한국은 (정확히는, 서울은) 일본을 (정확히는, 도쿄를) 20~30년 정도 시차를 두고 닮아있다, 좇아간다는 걸 여러모로 알게 되었었는데.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시차가 짧아졌을 뿐, 여전히 그렇구나, 라는 생각을 여러 번 되새김질 했다.
한국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쯤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 길거리에다 책상 하나 펴놓고도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해주던 게. 그 후 또 한동안은 현금 서비스, 개인 파산.. 같은 게 뉴스의 주요 헤드라인이었지. 소설로 대충 유추해보면, 일본은 1970년대에 이미 신용카드 마구 발급해주고, 80년대 초쯤에는 개인의 빚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했던 모양. 폭력적인 빚 독촉을 금지하는 규체법이 만들어진 게 83년 11월이니.
그러므로, 일본 경제 활황기부터 거품 경제가 무너진 때, 그 이후 다시 살아나기까지 쭉~ 한 번 공부해보면 상당히 유익할 것 같은 느낌이자 확신이 드는데... 으음, 천천히(...) 찾아봐야지;; 요즘 일본은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좀 낙관하지 어려워보여서 (당장 내년에 주택담보 대출자들 원금상환이 시작되는 해라는 것부터, 가계부채가 조 단위에 이르는 것도 그렇고..) 닮은 꼴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벌어진 것인지도 한 번 연구해보면 재미(?)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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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다움)
문득, 추적 과정이 굉장히 일본 답다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탐문을 통해 과거를 추적해 가는데도 끝을 볼 수 있었던 건, 몇 년 전 일인데다 본인이 담당했을 때의 일도 아니라 상당히 귀찮을법한데도 주인공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본인이 잘 모르는 사소한 문의에 대해 물어물어서라도 뭐든 어떤 답을 가져다준다는 건, 일본이기에 그랬을 거니까. 일본 여행이 편리한 이유기도 하지..
뭐, 가끔 딱딱하게 거절하는 인물들도 등장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엄격하고 사무적인 전형적인 일본인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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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몇몇 공감되었던 부분 발췌
"그러나 현재의 도코는 더이상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토지가 아니다. 땅의 기운이 사라지고, 비도 내리지 않고, 경작할 괭이도 없는 척박한 황무지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대도시로서의 기능뿐이다. 그것은 자동차와 매우 흡사하다. 제아무리 고급 사양에 성능이 뛰어나다 해도 사람이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자동차는 타고 다니 며 편리하게 사용하고, 이따금 정비를 맡기고 세차를 해주고, 수명이 다 되거나 질리면 새것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그것뿐이다. 도쿄도 그와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이 도쿄라는 차에 필적할만한 성능을 지닌 다른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있더라도 개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사용하게 된 것뿐이지, 본래는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이다."
> 서울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었음......
"사망했을 때 세키네 요시코 씨는······."
“쉰아홉 살이었습니다. 나이만 보면 아직 젊죠. 그래도 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생겼을 거예요. 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모아둔 돈도 없는데, 일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으로 끙끙거렸나봅니다. 그게 심해져서 순간적으로 죽을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한 거죠."
>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한 국가가 일본. 그리고, 지금,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들어가고 있는 중인 국가가 한국이라고 한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 또한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걱정스럽다
"시짱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고, 표정도 밝았다고 해요. 화장이 짙어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 친구도 시짱 소문을 이것저것 들었던지라 '힘들었다며?'라고 속을 떠봤는데, ‘뭐 그렇지’라며 웃기만 했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겠지." 이사카가 말했다. "인생행로에 차질이 생겼을 때 학교 동창생을 마주치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으니까."
> 그렇더라고
"그렇게 점점 안 좋은 쪽으로 굴러가다 막바지에 다다르는 최악의 장소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카드깜'입니다. 혼마 씨는 직업관계상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고객이 신용카드를 만들어 물건을 구입하게 한 후, 그것을 70퍼센트 정도 가격으로 사들여서 결제액을 충당하는 방법입니다. 대상 물품은 전자제품에서 장식품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신칸센 차표죠. 그것이 티켓 할인판매점으로 흘러들어서 값싸게 팔리는 겁니다.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차표를 사서 출장을 가곤 하죠. 어쨌든 싸니까요."
> 오사카 남바역 앞에도 티켓할인판매점이 있다. 가끔씩, 어떻게 싸게 파는 거지? 궁금했는데.. 이런 거였나;
혼마가 희미하게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경찰관 비리의 거의 대부분에 신용대출 문제가 얽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요?" 변호사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맞습니다. 사회적 체면을 지켜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 밖에도 목사나 군인, 각계 공무원······" 분명 웃을 일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천만 엔, 이천만 엔씩 빌려주는 업자가 있다는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죠. 그러나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 업계 자체가 장렬한 자전거조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빌려주고, 빌려주고, 또 빌려주는 겁니다. 마지막에 뒤집어쓰는 게 자기네 회사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은행이든 신용판매회사든 신용대출이든 대기업은 좀처럼 마지막 차례가 되지 않아요. 지금 얘기한 구조 속에서 피라미드 상층에 있는 업자는 절대 당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청구서는 아래로, 또 아래로 밀려갑니다. 그에 짓눌려 채무자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에 옥죄어서,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는 곳까지 침몰해갑니다"
(*) 만성적으로 자기 자본이 부족하여 타인의 자본을 잇달아 거두어들여서 가까스로 이어가는 조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섬뜩한 얘기다. 대기업은 결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 하에서, 가장 앞장서서 신용불량 사회를 만드는 게 대기업이라는 얘기거든. 뭐, 이미 월스트리트 사태 때도 증명되었지만.
"그애가 신용카드 삼매경에 빠진 까닭은, 그렇게 하면 착각에 빠져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착각?" "네, 그렇죠." 후미에가 두 손을 활짝 펴쳐 보이며 말했다. "돈도 없지. 학력도 없지. 딱히 이렇다 하게 내세울 능력도 없어요. 얼굴 하나로 먹고살 만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후미에는 말을 이었다. "남자들 중에도 그런 부류가 있어요. 오히려 여자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죠.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 애쓰는 것도 그런 거 아닌가요? 다 착각이에요. 다이어트에 미친 여자를 비웃을 순 없어요. 다들 착각에 빠져 사니까." 혼마는 불현듯 떠올렸따. 쇼와 50년대 후반의 신용대출 대란의 근저에는 내 집 마련 소망과 그것에 서 비롯한 무리한 주택자금대출이 있었다는 사와키의 말을. 그것 역시 착각 아니었을까. '내 집만 마련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풍요로운 삶이 보장된다'라는 착각······
"옛날에는 자기 착각대로 살아볼 만한 군자금이 아무한테나 없었잖아요? 그런 군자금을 투입할 대상도,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도 적었고요. 예를 들자면 미용도, 성형도, 강력한 입시학원도, 명품들을 늘어놓은 카탈로그 잡지도 없었으니까."
> 이걸 하면, 이걸 사면...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 지금도 반복되는 착각.
"언젠가 남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했죠. 저기, 뱀이 탈피하는 이유가 무너지 알아요?" "탈피?"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혼마보다 앞서 마도쓰가 대답했다. "성장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후미에가 웃었다. "아니에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다리 따위 없어도 상관없잖아요. 뱀은 뱀이니까. 그냥 뱀이니까. 후미에가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뱀은 생각해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게 행복하다고. 거기까지가 우리 남편의 학설. 그리고 여기부터는 내 학설인데,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 경쟁과 비교가 일상적인 사회에서는, 알면서도 '없어도 상관없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나약한 발언일지 몰라도.
"놀라셨죠? 그렇지만 제 얘기를 들으시면 납득이 갈 겁니다. 시짱 집에는 친척이 거의 없잖아요. 사십구재가 너무 쓸쓸하면 부처님께 죄송하다며 이웃사람들이 같이 분향을 올리러 간 거예요."
> 진짜 트리비아. 음? 일본도 49제가 있어? 라고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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