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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대학 다닐 때 들은 얘긴데, 두고 두고 곱씹을 수록 참으로 명언이다 싶은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알고 보면' 미운 놈은 하나도 없어.
미운 놈이란 건 말이야.. 알고 보고 싶지도 않은 놈이 미운 놈인 거야.

정말 그렇다.


뭐 가끔 아예 말이 안 통할 거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먼저 허들을 낮추고 대화를 시도해보면 - 이렇게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하고 싶다면 상대에게 먼저 나의 약점이나 실수,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미안한 점 등 나의 못난 구석(허물)을 보여줘야 한다. 상대로 하여금 경계를 없애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서로 간에 진심을 털어놓는 가장 좋은 방법 - 알고 보면 대게는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적당히 착하기도 하고, 적당히 못된 생각도 하고, 적당히 약은 짓도 하는.. 그런 보통 사람.

우린 모두 100% 올바르게, 선하게, 합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비난했던 누군가의 행동, 말이라 하더라도 그와 함께 자근자근 속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거다. 서로 자존심 세우고 있을 때야 서로 자기는 절대로 안 그럴 것 같이 굴지만. 실제로 내가 비난한 행위를 동일하게 반복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 완전무결한 인간이 서로서로 잘 아닌 걸 아니까, 그러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미운 놈이 미운 놈인 건, 이렇게 마주 앉아 속 이야기를 하거나 서로의 진심을 교환하고 싶어지지 않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쟤한테도 사정이 있을 거야.. 라거나,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한 번 들어나 볼까? 라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없으니 미워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다. 내가 아는 수준에서 비난하거나 싫어하면 그만이니까.

갑작스럽게 '미운 놈'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준기 때문이다. -_-a


나는 무릎팍도사의 애청자이긴 하지만, TV나 예능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 인물들이 게스트로 나올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진심을 털어놓는 (듯 연출된) 쇼라고 생각한다. 강호동의 언뜻 공격적인 것 같은, 날카로운 것 같은, 노골적인 것 같은 많은 질문들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유도하는, 초대된 게스트가 자기 변명을 할 수 있는 물꼬라는 걸 안다.

그래서 스캔들과 가쉽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나는 뭔가 신선한 답변이 나오길 기대하지 않는다. 결코 출연자 자신의 이미지에 해가 되는 발언을 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가쉽을 인정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을 걸 안다.  

이를 테면, 고현정에게 "시댁 사람들이 정말 영어로 대화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할 게 예상된다는 거다. 거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게 고현정 자신에게 좋을까? 절대 아니다. 무릎팍 도사에서 했던 그대로, '시댁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고 잘해줬다'고 말하는 것이, 고현정에게도 삼성에게도 "정답"이다.

추성훈에게 "한국이 미워졌나?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라고 물었을 때, 추성훈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가 여럿 있었을까? 아니다. 무릎팍 도사 추성훈 편에서 강호동의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었다고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바로 그 노골적인 질문들이야말로 추성훈이 그 쇼를 통해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법 아닌 비법이었단 얘기다. 거기 출연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도,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모두 훈훈하게 고개 끄덕이면서 볼 수 있도록 연출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쨌거나 무릎팍 도사의 애청자이다. ^^a 그리고 이것이 연출된 쇼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출연자들이 전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분명 진실도 있을 것이며, 그들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어느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까지 할 일 없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은 아니며, 그 정도로 출연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지도 않다.) 적어도 사건(?) 당사자의 입으로 해명이든 변명이든 진실이든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데서도 무릎팍 도사라는 쇼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쇼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무릎팍 도사는 건너 뛰었다. 그리고 다음 주도 건너 뛸 예정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 모든 건 이준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나에게는 이준기가 바로 그 '미운 놈'이다. 이 녀석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을 테고, 자기 생각이 있을 것인데.. 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마주 앉아 속 얘기를 들어주고 싶지조차 않은 상대. 그게 이준기다. -_-

이 녀석이 왜 그 정도까지 미운 놈이냐고 묻는다면, 뭐 그리 깊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연예인 상대로 '깊은' 사정이 있을 리도 없고, 더 알아보고 싶은 욕구조차 생기지 않는, 꼴보기 싫어서 아예 보지도 않는 미운 놈이라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a (그러니까 여기서 '알고 보면 괜찮은 배우예요~' 같은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알고 보고 싶지도 않다"는 게 미운 놈의 핵심 정의다!) 기억 나는 건, 일본 찬양 발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것과 일본 찬양 발언보다도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변명을 했다는 것, 그리고 영화인들 스크린쿼터 시위할 때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네 하면서 (쥐뿔도 아닌데 지 좀 떴다고 = 이것은 마음의 소리...) 설쳐댔던 거?

그래도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릎팍 도사를 살짝 플레이해봤다.





오!! 이런 반가운 내용이!!!!!
(본래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를 더 잘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ㅋㅋㅋㅋ)

급 만족해서 여기까지만 보고 도로 스톱했다. ㅋㅋㅋㅋㅋ

이 짧은 과정을 겪으면서(?) 저 선배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던 것.
난 저 말이 꽤나 보편적으로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그리고, 여기서 얻어갈 교훈이 있다면, 미운 놈이라도 잘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화를 시도해 보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면, 그건 그냥 미운 놈. ㅋㅋㅋ 밉다고 해서 뭐 어찌할 것도 아니니 (우린 다 큰 어른!)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수 밖에. 어른답게 뒤에서 욕하는 짓은 하지 마시고. 오케이? 



(덧)

① 끝부분에 잔뜩 이준기 얘기를 하고 있긴 한데, 이준기 욕하자고 쓴 글은 아님. 이준기는 단지 이 글을 쓰게끔 한, 미운 놈의 정의를 되새기게끔 해준 일종의 계기였을 뿐. 이준기 관련 뉴스가 뜨면 아예 안 볼 정도로 평소엔 별 관심도 없는 인물임. (그러니까 밉다면서 찾아다니면서 욕 댓글 쓰고 싸우고 하는 애들 보면 참.. 할 일 없는 거야.. 안 그런가? -.-)

② 내가 본래 '스크린쿼터'가 문제될 때만 톡 하고 나서서 운동하는 영화인들 싫어함. 스크린쿼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고, 그 문제에만 목소리를 내는 얍실한 영화인들 - 정확히는 배우들이 싫음. 평소에 영화산업 관련해서 문제될 때도 좀 행동해봐라 이거지. 특히 영화 스태프들 처우 문제라던가, 그런 거 문제될 때는 다들 어디 가 있는 건데? (나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는 꼭 극장 가서 봄. 그리고 한국영화 자체를 잘 보는 편이기도 하고. - 사실 나이 들어서 자막 읽는 것도 귀찮고, 컴퓨터로 다운 받아서 영화 보는 것도 못하겠다는 이유도... ㅋㅋㅋㅋ)

③ 아마 '왕의 남자' 감독이었던가.. 이준기가 스크린쿼터 관련 대통령에게 편지 쓴다고 설쳤을 때 (정말 보냈던가? 는 기억이 잘..) 애써 애둘러서 '어린 놈이 아직 철 모르고 설치네' 같은 발언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물론 내가 그 의중을 읽기에 그리 들렸다는 것이고 훨씬 덜 직접적으로 얘기했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인간은 자기 믿음에 대한 증거를 잘 기억한다. ㅋㅋㅋㅋㅋ)

④ 무릎팍 도사 이준기편을 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건.. 사실 난 그냥 이준기 얼굴이 싫은 걸지도 모른다는 거? - -;; 피지컬리, 테크니컬리 얼굴만이 아니라, 그 얼굴에서 전달되는 표정이라든가 분위기라든가.. 그런 게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거 같기도.

⑤ 유세윤 너무 웃겨♡♡♡♡♡♡♡

⑥ 이력서 쓰다 말고 이게 왠 장문의 포스팅이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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